14장: 은행나무 과수원 회장 부처님
1. 40대 후반, 목수가 되다
40대 후반, 20년 넘게 몸담았던 익숙한 직장을 떠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번듯한 직장 대신 집 짓는 목수의 길을 선택한 지금, 저는 그 결정을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기술을 익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목수 일을 하다 보니 세상 곳곳에 숨어 계신 ‘부처님’들을 자주 만나게 되거든요.
오늘은 충남 아산에서 만난 아주 특별한 부처님, 이른바 '회장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 하나님이 보낸 일꾼, 부처님이 거두시다
최근 부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냉전 시대를 끝내고 화해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 분명한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박목수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가서 실컷 놀다 오너라"가 아니라 "가서 열심히 일해라"라고 보내신 것을 아산의 회장부처님께서는 이미 꿰뚫고 계신 듯하거든요.
이 부처님께서는 박목수가 한가하게 노는 꼴을 잠시도 못 보시는것 같습니다. 일이 생기기만 하면 "박 목수!"를 부르시며 이곳저곳의 일을 맡기시니,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을 부처님이 아주 알뜰하게 부려 쓰시는 형국입니다. 참고로 박목수는 오래전에는 일년에 한두번 정도 교회에 간적있습니다만 지금은 안가는데 하나님께서 왜 게으름을 피우는지 아마 잘 알고 계실겁니다
3. 수천 평 과수원을 일구는 어느 금융맨의 '이해 불가'한 노후
이 특별한 인연의 주인공은 평생 금융권에서 검소하게 근무하시다 은퇴하신 종중 회장님이십니다. 해병대 장교출신이라고 하시는데 전혀 그런 모습은 보이질않습니다만, 서울에서 남부럽지 않게 노후를 즐기실 수 있는 부유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종손으로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으신 고택과 수천 평의 은행나무 과수원과 텃밭을 손수 일구고 계십니다.
솔직히 중생인 제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저라면 서울에서 친구들과 골프도 치고, 해외여행도 다니며 편하게 지낼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회장님은 뙤약볕 아래서 흙을 만지며 땀 흘리는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의 투박한 손이야말로 진짜 수행자의 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4. 유명 업체를 제치고 이름 없는 박 목수를 선택한 이유
이분과의 주택 건축 인연도 참 기묘합니다.
어느 날 "박목수의 건축여행" 카페 회원님의 소개로 박목수를 알게되었다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미 유명 건축 업체와 계약을 마치고 상세 시공설계가 진행 중인 상태셨습니다.
'이미 계약까지 하신 분이 왜 나를 보자고 하실까?' 의아했지만, 그저 세상사는 이야기나 나누자는 마음으로 찾아뵈었죠.
궁금해하시는 내용에 제 소신껏 답해드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요? 견적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계약한 곳이 있는데 무슨 견적이냐고 되물었지만, 그냥 견적을 요구하셨습니다. 결국 요구대로 견적을 드렸고, 그 다음주쯤 회장님께서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 그 유명 업체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저 박 목수에게 집을 맡기겠다고 하신겁니다. 참 희얀한 일이었습니다
5. 아이스박스에 담긴 마음
그리고 몇차례 협의 과정을 거치고, 상세 시공 매뉴얼을 만들고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현장에 나가면 언제 준비를 해놓으셨는지 한켠에는 항상 아이스박스가 놓여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시원한 얼음과 음료, 정성스러운 간식이 들어있었습니다. 점심때면 어김없이 인근 맛집으로 저를 데려가셨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감동시킨 건 건축자재를 싣고 오는 화물차 기사님들이 짐을 내리고 돌아갈 때면, 회장님은 꼭 시원한 음료와 간식을 챙겨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배어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 지금까지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되뇌어보지만,
제게는 완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몸에 밴 '자비로움'이였습니다.
6. 귀찮고 행복한 인연
공사가 끝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회장 부처님과의 인연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때로는 박목수를 절에 데려가시기도 하고, 주변에 작은 일만 생겨도 "박 목수, 이것 좀 봐줘"라며 박목수를 정말 귀찮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 귀찮음이 싫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금융맨에서 농부로, 건축주에서 인생의 스승으로 박목수 곁에 계셔주시는 회장 부처님.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 박 목수는 오늘도 아산의 은행나무 향기를 맡으며 부처님의 부름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회장 부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