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수백억 땅부자 회장님께서 벽돌쌓는 이유
강원도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태백산맥의 장엄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누구나 꿈꿀 법한 명당에 수천 평 규모의 전원주택 단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화려한 외관 뒤에 숨겨진, 한 노부부 회장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감동적인 미담이 아닙니다.
원칙 없는 건축이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는지에 대한 서늘한 기록입니다.
1. 멈춰버린 산토리니, 그리고 구겨진 도면
박목수의 건축여행 까페 회원님의 소개로 이 멋진곳에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내에는 유독 눈에 띄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인 디자인의 주택이었죠. 하지만 골조만 덩그러니 남은 채 공사는 오랫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 넓은 단지의 토지주 회장님의 주택이라고 건축주께서 알려주시고 본인이 이 땅을 구입하기전 유명건축업체에서 단지내 전체 토지를 200억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했답니다
박목수의 건축공사가 시작된 10월 어느날
70대 중반의 여성분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박목수를 찾아와 하소연했습니다.
“옆에 짓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인데, 한번 만 봐주세요.”
공사를 맡았던 건축업자가 가버렸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건축 현장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장을 점검해 보니 전기, 수도 배관은 엉뚱한 곳에 가 있고, 창문과 방문의 위치조차 맞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도면을 보여달라고 하자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몇장의 도면이 전부라고 한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2. "지금 당장 창문을 달 수 있나요?"
회장님께서 물어왔다.
창문을 설치하려고하는데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회장님의 관심은 '당장 창문을 다는 것'이었습니다.
현 상태에서 다음 공정의 순서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회장님, 창문을 달기 전에 외장재와 내장재 마감 방식부터 정해야 합니다. 책임질 소장을 정하시고 그 분과 함께 전체 계획을 다시 짜야 해요."
하지만 그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듯 보였습니다. 아마 창호 업자가 창을 설치하고 잔금을 받기 위해 회장님을 재촉하고 있을듯 보였습니다.
며칠 뒤, 회장님은 더 황당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거실 파티오 창이 너무 넓어서 중간에 기둥을 세워야 한다고 창호 업체에서 이야기하는데, 그거 좀 해줄 수 있어요?"
내,외장 마감을 어떻게 할건지 결정되었는지 물었지만 역시 별 관심이 없는듯 보였다.
그래서 작업 방법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자
"그거 좀 해줄수 있어요?" 라고 물어오길래
이건 시작에 불과한 사소한 문제였기에 방법만을 설명하고 현장을 떠났다
3. 시멘트 벽돌 2줄로 세운 2.4m의 공포
얼마 후 다시 불려갔다. "기둥을 만들었는데 한번 봐 주세요"
현장에 도착한 순간 기절할 뻔했습니다.
위의 사진과 거의 똑 같은 형국이었습니다
2.4m 높이의 넓은 창문 중앙에 노부부가 직접 시멘트 벽돌을 두 줄로 아슬아슬하게 쌓아 기둥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벽돌 기둥은 흔들렸고, 남편분은 그 기둥이 넘어질까 봐 낡은 사다리 위에서 맨손으로 기둥을 붙잡고 계셨습니다.
"이러시면 큰일 납니다!
당장 허물고 제대로 구조 보강을 하셔야 해요!"
간곡히 만류했지만, 회장님 부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 창문을 달아야 한다는 생각뿐인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고
회장님으로 부터 걸려온 전화 "겨울이 오면 추울것 같아서 창을 모두 설치했다"고 한다.
아마 기둥이 창틀을 버티는 게 아니라, 창틀이 벽돌 기둥을 붙잡고 있는 구조로 설치된것 같습니다만
겉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그해 말 약 3개월에 걸쳐 박목수가 공사하던 주택은 완공되어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4. 수백억 자산가가 현장 쓰레기를 치우는 이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회장님 부부는 제가 있는 양평까지 찾아와 공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상세 도면과 시공 매뉴얼이 없으면 공사를 재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할 일과 예상금액 등 전반적인 절차에 대해 설명드렸지만 역시 별로 관심이 없는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소장을 구해서 공사를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봄이오고 박목수가 완공한 주택 건축주분의 추가 요청작업인 외부 담장, 주차장, 조경공사를 마무리하는 동안 회장님 주택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듯 보였고, 간혹 회장님 부부는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 나와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5. 4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형벌
다시 몇달이 지나고 그 해 초 겨울 무렵
카카오톡으로 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현장에서 기둥을 붙잡고 계시던 남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고장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러 이듬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그 산토리니풍 주택은 여전히 미완성인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200억 원에 땅을 파셨으면 정말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계실텐데..."
6. 맺음말: NO MANUAL, NO WORK
건축 현장에서 '모르는것은 죄가 아니지만, '무모함'은 재앙입니다. 매뉴얼없는 공사, 순서를 무시한 시공은 결국 돈뿐만 아니라 사람의 영혼까지 갉아먹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분중에 "남들 다 하는 집짓기, 나도 대충 업자시켜서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백억 자산가도 원칙을 무시하면 현장의 노예가 됩니다.
알고 시작해도 힘든 것이 건축이고, 모르고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건축현장입니다.
부디 이 비극적인 실화가 여러분에게는 안전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