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복병: 10만 원에 열린 ‘통행금지’
위 그림은 제미나이를 이용해서 작성해준 문장을 노트북LM 인포그래픽과 AI오디오뷰를 특별한 프롬프트없이 만들어봤습니다
전원주택이나 건물을 짓는 과정은 흔히 '설계도대로 진행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건축은 공학이기 이전에 "심리전"으로 예상치 못한 변수(복병)를 헤쳐나가야 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자재 반입 날 벌어졌던 한 실화를 통해, 건축 현장의 또다른 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1. 평온한 새벽을 깨운 불길한 전조
공사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는 날은 대개 대규모 자재가 반입되는 날입니다.
1차 구조재와 부자재 등 집의 뼈대가 될 중요한 자재들이 들어오는 날은 현장 소장이나 목수들에게 좀 바쁘게 돌아가는 날이기도 하죠.
저 역시 자재상 사장님께 몇번 확인 전화를 걸어 "잔재반입과 현장 작업이 8시에 시작되니, 지게차 작업에 맞춰 정시에 도착해달라"고 당부해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전날 저녁, 화물차 기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일 이른 아침에 도착할 테니 자재를 좀 빨리 내려달라"는 요청이었죠. 현장 스케줄상 무리였지만, 장거리 운행을 하는 기사님들의 노고를 알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현장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습니다.
이것이 당일 아침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2. "길이 좁아 못 들어갑니다" - 현장을 멈춰 세운 한마디
약속된 아침 8시, 현장은 이미 자재입고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지게차도 이미 시간에 맞춰 대기 중이었고, 작업자들도 자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큰길가에 도착했다는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 "이제 안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화물차의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의아한 마음에 직접 큰길까지 걸어 나가 보니, 기사님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좁아서 이 차는 못 들어갑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현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보다 더 큰 덤프트럭이나 중장비들도 수없이 드나들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사님은 도로의 경사도와 회전 반경을 운운하며 도저히 진입할 수 없다는 논리만 되풀이했습니다.
3. 거짓의 장벽과 현장의 혼란
자재 반입이 중단되면 그날 예정된 모든 공정은 올스톱됩니다. 대기 중인 인부들의 인건비, 지게차 대여료 등 눈앞에서 생돈이 날아가는 상황이었죠. 결국 급하게 2톤 소형 화물차를 수배해 자재를 옮겨 싣는 작업을 계획하며 현장은 다시 바빠졌습니다.
그때, 현장 옆에서 지하수 공사를 준비하던 사장님이 다가와 슬쩍 물었습니다. 상황을 듣던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화물차 쪽을 가리켰습니다. "목수님, 저 기사 왜 저런대요? 저도 어제 똑같은 차로 저 골목 서너 번이나 드나들었는데요. 길 하나도 안 좁아요."
이 말은 제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기사님이 주장하는 '안전'과 '도로 협소'는 본질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기사님은 그저 현장 깊숙이 들어가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싶었거나,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 10만 원으로 열린 '마법의 길'
화물차 기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지하수 공사 사장님의 이야기를 전했지만, 그는 이제 "도로가 파손되면 주민 민원이 발생한다"는 둥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곧 돈인 현장에서 더 이상의 논쟁은 사치였습니다. 저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기사님, 제가 수고비로 10만 원 더 챙겨드릴 테니까 그냥 들어와 주십시오. 책임은 제가 집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화 통화가 채 끊기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3분도 되지 않아 그 거대한 화물차가 좁다던 모퉁이를 매끄럽게 돌아 현장 마당 한복판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절대 불가능하다"던 그 모든 물리적 제약들이 10만 원이라는 현금 한 장에 마법처럼 사라진 순간이었습니다.
5. 건축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짓는 일
지게차가 자재를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저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돈이면 지옥문도 열 수 있다는 옛말이 비단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10만원 없었으면 큰일날뻔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