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낭화
초봄의 시작은 홍매화가 알리고, 그 뒤를 이어 명자꽃과 수선화, 수서해당화가 차례로 피어나며 봄의 풍경을 완성해 갑니다. 하지만 그 화사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비로소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드러내는 꽃이 있습니다.
돌틈 사이 척박한 자리에서도 고요히 자라는 금낭화.박목수가 유난히 애착을 가지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주 오래전, 소백산 자락, 보슬비가 내리던 어느 날, 작은 오두막 돌담장 앞에서 처음 마주한 이 꽃은 그저 ‘예쁘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날 이후, 언젠가 전원에 집을 짓게 된다면 꼭 이 꽃을 키워보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어느덧 그 다짐도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마진배언덕" 이곳저곳에 금낭화가 자라고 있습니다 금낭화가 피는 시기가 되면 늘 같은 다짐을 합니다.
이슬 맺힌 순간을 담아내겠다고. 이른 새벽, 아직 공기가 차가운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레 다가가지만 자연은 쉽게 그 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2년째, 아직도 그 한 장의 사진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금랑화의 개화 기간은 약 2주 남짓. 짧고도 아쉬운 시간 속에서 어느새 꽃은 지기 시작하고, 작은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다.
올해도 결국 그 장면을 담지 못한 채 다시 시간을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 꽃은 기다림마저도 아름답게 만들어주니까요. 내년 봄,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카메라를 들고 우산을 받쳐들고 서 있을 나를 떠올리며 오늘의 아쉬움을 작은 설렘으로 남겨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