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행 차창밖으로 흐르던 붉은 꽃의 물결
①부에 이어 양귀비꽃과의 인연은 독일에서부터입니다
2000년대 초 독일의 북동부지역 베를린에서 남동쪽으로 2시간거리인 스프렘베르긍라는곳 폴란드 국경근처에서 근무하던 시절, 주말을 이용해 체코의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출발해 프라하까지 운행하던 유로시티(EuroCity, EC) 국제열차를 이용했습니다. 유럽의 여러나라를 연결하는 철도로 고속으로 목적지만 향하는 열차가 아니라, 국경을 넘나들며 유럽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낭만이
살아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기차가 엘베강 계곡을 따라 달리자 창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과 숲, 그리고 철길 둑방을
붉게 물들인 개양귀비꽃이 시야를 가득 채웠습니다. 바람을 따라 한 방향으로 흔들리는 꽃들의 모습은 마치
자연이 여행자를 위해 준비한 환영 인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아직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풍경만이 아니었습니다.
철길 이음새를 지날 때마다 들려오던 '달그락, 달그락' 하는 일정한 리듬, 애기
요람처럼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리는 객차, 창문을 통해 시원하게 불어오던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맞춰 춤추듯 흔들리던 붉은 양귀비꽃.
그 순간만큼은 마치 독일 베를린의 유명한 심포니 공연장에
앉아 있는 듯했습니다.
철길의 리듬은 타악기처럼 들렸고, 창밖을
스치는 바람은 현악기같았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개양귀비는 웅장한 교향곡의 선율처럼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마치 자연이 만들어 낸 최고의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이런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그림이 있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 〈양귀비 들판(Poppy Field)〉입니다.
초록 들판 위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와 평화로운 자연을 담아낸 이 작품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 아래 그림 참조)
모네의 그림을 볼 때마다 저는 미술관보다 먼저 그날의 기차 여행을 떠올립니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졌던 붉은 꽃의 물결, 철길을 따라 울리던 리듬, 그리고 가슴속 깊이 스며들던 자유로운 바람이 다시 살아나는 듯합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그날의 풍경만은 아직도 제 마음속에서 변함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독일에서 시작된 그 추억은 마진배언덕의 양귀비꽃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때는 여행자의 눈으로 감탄했던 꽃이었지만, 이제는 제가 직접 가꾼 꽃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미소를 짓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새로운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름다운 풍경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씨앗처럼 남아 언젠가 다시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붉은 개양귀비의 추억은 긴 세월을 돌아,
오늘도 마진배언덕에서 새로운 추억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